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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립교향악단 제229회 정기연주회

나루컬쳐 조회수 244
공 연 명 : 전주시립교향악단 제229회 정기연주회
공연일시 : 2018년 06월 20일(수) 오후 07:30
공연장소 :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연지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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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휘 _ 최 희 준
지휘자 최희준은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지휘과에서 디플롬과 최고연주자 과정(Konzertexamen)을 졸업하고, 드레스덴 국립음대에서 개교 이래 최초로 지휘과 최고연주자 과정(Meisterklasse)을 졸업하였다. 그는 2003년 독일 전 음대 지휘 콩쿠르(Deutsche Hochschulwettbewerb)에서 심사위원 전원만장일치로 1위, 2005년 바트 홈부르크(Bad Homburg)지휘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최희준은 그간 베를린 심포니(Berliner Sinfonie Orchester), 예나 필하모니(Jena Philharmonie), 카셀 (Staatsorchester Kassel),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isches Staastsorchester), 라인란트 팔츠(Staatsorchester Rheinland-Pfalz) 등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뮌헨 국립 가극장, 하이델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안나베르크 오페라 하우스 등에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한 다수의 오페라 공연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였고 라인스베르크 궁 가극장에서 Joern Arnecke의 Drei Helden (세 영웅)을 초연하며 베를린의 주요 일간지인 Berliner Morgenpost로부터 “연주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지휘”라는 호평을 받았다. 또한 오더-슈프레(Oder-Spree)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의 총감독 및 지휘를 맡았으며, 작센 주립극장의 카펠마이스터로서 다수의 오페라와 발레를 지휘하였다. 국내에서는 서울, 부천, 대전, 광주, 대구시립교향악단 등을 객원지휘 하였고, 제41회 난파음악상을 수상하였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양대학교 지휘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2월 전주시립교향악단 제7대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취임하였다.


바이올린 _ 피 호 영
완벽한 테크닉으로 선보이는 한 편의 서정시 같은 연주
피호영은 해마다 독주회, 협연 무대, 실내악, 오케스트라 활동까지 그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특히 2007년 강남역에서 벌인 “길거리 연주”는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동안 독특한 레퍼토리와 테마가 있는 독주회로 신선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최근 브람스, 프로코피예프, 모차르트, 베토벤, 포레 로 이어지는 소나타 전곡연주회로 누구보다 학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직접 창단한 비르투오조 콰르텟을 비롯해 한국페스티발앙상블, 한음챔버앙상블, 성신 트리오 등으로 다채로운 실내악 무대를 선보이고 있으며, 독일 라이프치히 유로 음악제, 프랑스 퐁르브아 음악제 등의 초빙교수로도 활약 중이다. 오케스트라 사랑도 각별하여 서울대 재학시절 서울시향 수석으로 입단, 유학 후에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악장으로 10년을 함께 했다. 이후 서울시향, 부천시향 등 국내 유수의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으로 초빙되어 활동했고, 슈퍼월드오케스트라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으로 로린 마젤, 베르나르트 하이딩크, 주빈 메타 등의 세계적인 지휘자와도 함께했다.
13세 때 서울시향과 파가니니 협주곡 협연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피호영은 이화경향, 한국일보, 중앙 음악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면서 차세대 선두주자로 나섰다.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실기수석 졸업, 프랑스 정부 국비장학생으로 도불하여 미셸 오클레를 사사,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을 수석 졸업했다. 파리 에꼴 노르말 음악원 실내악 과정 역시 수석 졸업하고, 이고르 오짐 교수의 부름을 받아 스위스 베른국립음악원을 졸업, 스위스 베른심포니와 협연했다. 한국음악협회 이사, 성신여대음대 학장을 역임하고, 일찍이 5.16 민족상 음악상을 수상하고, 중앙일보선정 올해의음악가상, 한국실연자협회 클래식부문 대상,
서울음악 대상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
현재, DMZ연천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이사, 성신여대음대 기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피호영은 1661년 Andeas Guarnerius로 연주하고있다
 

첼    로 _ 박 경 옥
첼리스트 박경옥은 서울예고와 서울음대를 수석 입학·졸업하며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독일 정부 장학금(DAAD)으로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에서 수학하였으며, Rotary International Fellowship으로 미국 Yale 대학원에서 석사학위(MA)를, 뉴욕 주립대(SUNY at Stony Brook)에서 음악박사 학위(DMA)를 받았다.
1988년 귀국 후 부천시향 첼로 수석을 역임했으며, 솔리스트, 협연자, 실내악 주자로 모든 음악분야에서 왕성한 연주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박경옥은 서울 예술의전당 주최의 교향악축제, 실내악축제, 가을음악축제 등에 초청받았으며, KBS 교향악단, 서울시향, 부천시향, 수원시향, 코리안 심포니, 프랑스 아비뇽 국립오케스트라 등과 협연하였다. 또한 1991년에 창단된 <콰르텟21>의 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콰르텟21>과 함께 오사카 국제실내악콩쿠르 입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올해의 예술상, 대원음악상 연주상 등을 수상하였다. <콰르텟21>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윤이상음악제에 초청되었고, 대한민국 문화외교사절로서 서남아시아를 순회 연주하였다. 박경옥은 동아음악콩쿠르에 1위 입상하였으며, 동아음악콩쿠르, 중앙음악콩쿠르 그리고 2007년부터 현재까지 오스트리아에서 개최되는 국제브람스음악콩쿠르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일본 키리시마 국제음악제의 교수로서 Dang Thai Son, Tsuyoshi Tsutsumi, Paul Edmund-Davis, Krzystof Jablonski, Emily Beynon과 같은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들과 20년 넘게 연주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일본 Kirishima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프랑스 Casals Music Festival, 폴란드 Emanacje Festival, 독일 Euro Art Music Festival 등지에서 연주한 박경옥은 1993년 이래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program

B. Smetana / Overture from "The Bartered Bride"
스메타나 / 서곡 “팔려간 신부”


J. Brahms /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브람스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a단조, 작품. 102
Ⅰ. Allegro
Ⅱ. Andante
Ⅲ. Vivace non troppo


A. Dvo?ák /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
드보르작 / 교향곡 8번 G장조, 작품. 88
Ⅰ. Allegro con brio
Ⅱ. Adagio
Ⅲ. Allegretto grazioso ? Molto vivace
Ⅳ. Allegro, ma non troppo


program note

B. Smetana / Overture from "The Bartered Bride"
스메타나 / 서곡 “팔려간 신부”
1859년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 참패를 하며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을 완화하기에 이른다. 이에 체코에는 새로운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당시 스메타나는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조국의 소식을 듣고 1861년에 귀국하여 국민적 오페라를 발표하였다. 이 곡은 이러한 의도에서 작곡된 2번째 작품으로 그에게 있어서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향토적인 민속무곡을 재치 있게 살리고 야성적인 농민들의 꾸밈새 없는 열광이 즐겁기 만한 작품으로 1863년 완성되었다.
서곡은 화려한 악곡의 팡파르로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데서 유래하는데, 곧 어떤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연극 혹은 다른 대규모의 작품에 대해 작품의 본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간략히 소개하는 음악을 의미 한다. 또한 이 용어는 종종 극음악이나 표제음악인 하나의 독립된 합주음악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과 거쉬인의 <쿠바 서곡>같은 작품이 그 예 이다. 첫 번째 공식적인 오페라 서곡은 륄리의 프랑스 오페라에서 시작되었는데, 이것은 장려한 리듬의 악구로 시작하고 이어서 주선율을 모방하는 빠른 악구가 잇따르는 악곡형식을 갖고 있다. 이탈리아식의 서곡은 빠르게-느리게-빠르게의 세 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770년대 후반에 알렉산드로 스카를라티에 의해 정립되었다. 프랑스식 서곡과 이탈리아식 서곡은 모두 다른 형식의 음악들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식 서곡은 특히 독일 작곡가들에 의하여 기악을 위한 모음곡의 첫 악장으로 사용되었다. 이탈리아식 서곡은 초기의 교향곡에서 빠르게-느리게-빠르게식의 악장 구성에 사용하였다. (연주시간 : 약 7분)


J. Brahms /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브람스 /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협주곡 a단조, 작품. 102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은 원래 브람스가 다섯 번째 교향곡으로 구상하고 있었던 작품으로 브람스가 이 곡의 형태를 바꾼 것은 그의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당시 브람스는 요하임과 소원한 관계에 있었다. 요하임은 소프라노인 부인과 브람스가 우정이상의 관계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부인의 공개적인 연주 활동도 금하기까지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도 요하임은 브람스의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변함없는 호의를 보였다. 브람스는 소원했던 요하임과 화해하기 위해 이 작품을 협주곡 형태로 바꿀 계획을 하게 된다.1987년 봄 스위스 베른근처 툰에서 머무르던 중 이중협주곡을 구상하면서 요하임에게 그의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보내게 된다. “자네에게 예술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네. 그것에 자네가 흥미를 가져 주었으면 좋으련만…” 이에 대해 요하임은 바로 호의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 답장을 보내게 되면서 그해 8월 전곡이 완성된다. 이런 배경으로 클라라는 이 곡을 `화해 협주곡'이라고 불렀다.이 작품은 바이올린과 함께 브람스가 좋아하는 첼로를 접목하여 두 악기를 위한 소편성 협주곡 구성으로 고전주의 정신을 부활하고자 하였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적 교향곡과 베토벤의 바이올린,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삼중협주곡의 영향을 받아 17∼8세기 합주 협주곡 형식을 취하면서 당시 유행하고 있던 바그너의 대편성에 맞서고 있었다. 사실 브람스로부터 작곡 구상을 듣고 클라라와 요하임은 이 곡에 대해 걱정을 하였다. 클라라는 그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로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을 독주악기로 같이 한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악기 자체도 광채가 없어 협주곡의 장래가 걱정된다. 이것은 작곡가에게는 지극히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그의 다른 많은 작품처럼 이 곡은 신선하고 온화한 작품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이 곡은 두 악기에 모두 고도의 기교를 요하고 있으면서 변화가 가장 풍부한 두 현악기로 연주하기 때문에 두 독주자의 연주력과 표현의 풍부함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뉴만은 그의 저서 `브람스전'에서 이 곡은 잊힐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수한 연주자를 만나게 되면 그 효과는 마치 스위스 베른의 창가에서 위풍당당한 알프스의 전경과 아름답게 펼쳐지는 빙하의 풍광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곡의 초연은 첼로 독주에 대해 자문을 하였던 요하임 사중주단의 첼리스트인 로베르트 하우스만과 함께 요하임이 바이올린을, 브람스 자신이 지휘를 맡아 그해 10월에 이루어졌다.? (연주시간 : 약 35분)


A. Dvo?ák / Symphony No. 8 in G Major, Op. 88
드보르작 / 교향곡 8번 G장조, 작품. 88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ak, 1841~1904)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경험하기 이전에는 영국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1884년 처음 영국을 방문한 그는 1876년에 작곡했던 “스타마트 마테르”를 지휘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이 당시의 감격을 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놀라지 마시오. 합창단이 무려 800명!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린만도 24명! 지휘대에 올라서보니 12000명의 청중이 열광하는 환호를 받았습니다. 나는 수없이 감사의 인사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오.”
이토록 열광적인 환대를 받은 드보르작은 이후 1891년에는 캠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12회에 걸쳐 영국을 방문했다. 그의 교향곡 8번 G장조가 1892년 런던의 노벨로 출판사에서 출판되며 ‘런던’이라는 부제를 갖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결코 영국과의 실질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고, 그렇다고 “신세계 교향곡”처럼 그 나라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영국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는 것 외에 영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더군다나 출판 당시의 부제 또한 작곡가가 의도한 것 또한 결코 아니다.
아홉 곡의 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작에게 있어서 특히 교향곡 8번이야말로 작곡가 자신의 민족적, 정서적 배경이 전면으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영국 방문을 마치고 체코로 돌아온 그는, 프라하 서남쪽 고원지대에 위치한 비소카라는 작은 산간마을에 별장을 지었다. 여름이면 여기에 머물렀던 드보르작은 이 고장의 자연에서 비롯한 보헤미안적인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곤 했는데, 바로 여기서 작곡한 교향곡 8번에는 비소카 마을에서 경험한 작곡가의 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보헤미안적인 풍경과 선율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품으로 창작해냈기에 드보르작에게 있어서 주저함이란 없었다. 1889년 여름 독일과 러시아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작품 구상에 들어간 드보르작은 불과 3개월만인 같은 해 11월 8일에 이 교향곡을 마무리 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교향곡은 친구들이나 브람스의 조언을 거의 받지 않고 작곡한 몇 안 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체코인으로서 자신의 유전자가 반응하여 울려낸 악상을 고스란히 오선지 위로 옮겨낸 셈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0년 2월 프라하에서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아마도 특유의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 때문에 1890년 4월 런던에서 초연을 가진 뒤, 런던 타임즈는 이 교향곡을 ‘전원 교향곡’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드보르작은 작곡가로서 가장 원숙한 작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한 만큼 드보르작은 지금까지 내려왔던 교향곡 전통과는 조금 다른 파격적인 모습을 이 교향곡에 담아내고자 했다. 첫 악장에서 전개부와 재현부를 연결해 주는 형식이나 단조로 시작하는 슈베르트풍의 서주 등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특히 2악장에서의 브루크너를 연상시키는 특징적인 휴지부와 바이올린 파트의 리드미컬한 상승, 이와 대조적인 장송 행진곡을 연상케 하는 장중한 발전부와 금관이 주도하는 스케일 큰 클라이맥스의 긴장감 등 드보르작이 바그너적인 극적 전개와 브루크너적인 발전 양식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드보르작이 작곡한 아홉 개의 교향곡들은 한 동안 그 ‘번호’가 혼동되어 사용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드보르작 생전에는 다섯 개의 교향곡만이 출판되었기 때문에 현재 교향곡 9번이라 불리는 ‘신세계로부터’는 상당히 오랜 동안 ‘5번 교향곡’으로 불렸고, 그 순서에 따라 교향곡 8번은 ‘4번 교향곡’으로 호칭되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앞선 네 개의 교향곡들이 모두 출판, 연주되고 있어 구 번호 체계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연주시간 : 약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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